한국에서 자전거가 언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다만 20세기를 전후한 개화시대일 것이라고 추측되고, 서양의 선교사나 개화파 인사들이 처음 들여왔으리라 생각될 뿐이다. 우리나라의 자전거 도입의 역사는 1896년 서재필 박사가 독립문 공사현장에 갈 때 처음으로 탔다는 설도 있고, 같은 해 고희성이 자전거를 탄 것이 처음이라 하기도 한다.
그 후 1898년 윤치호 선생이 하와이로부터 통타이어를 사용한 자전거를 도입해 왔다고 한다. 1950년대 후반부터 자전거가 생산되어 점차적으로 늘어난 자전거는 1960-1970년 사이에는 실용적인 주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현대에 이르러는 경기 및 레저용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00년대 초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사이클의 경기가 처음으로 개최된 것은 1906년 4월 22일 대회이었으나 본격적인 대회로 발전된 것은 1913년 이후이었다.
1920년대부터 한국과 일본 선수들이 동시에 경기에 참가하였으며, 이때 한국선수들은 민족 정신을 크게 일깨우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오늘날에도 기념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엄복동 선수는 1920년대에 일본선수들을 물리치고 많은 우승을 차지하여 한민족의 의기를 북돋는 주역이 되기도 하였다.
[제18회 동경올림픽의 대표 선수단]
좌측부터 송웅일, 앙광산, 이선배, 손성웅, 위경용, 조준교, 원정호, 조성환, 송웅현, 양영환, 서영석, 박병익 선수
1922년 5월 31일에는 전국 자전거대회가 개최되었고, 해방 후 1945년 11월 조선 자전차 경기연맹이 발기인대회를 하고 1946년 4월 대한 자전거 경기 연맹이 발족되었으며, 1947년 세계 사이클연맹(UCI)에 가입되어 국제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국이 국제대회에 최초로 참가한 것은 1948년 런던 올림픽대회이며, 그 후 1968년 멕시코 올림픽대회까지 계속 선수단을 파견 하였으나, 72년, 76년, 80년 올림픽에 불참 하였으며, 84년 LA올림픽부터 96년 아틀란타올림픽까지 계속 참가 하였고, 2000 시드니올림픽에도 출전하여 포인트 경기에서 4위에 오르며 한국사이클의 잠재력을 확인하였다.
또한 2002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구성은 선수가 은메달 2개를 획득한 이후, 현재까지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입상을 하고 있다.
아시아경기대회에 한국 사이클이 참가한 것은 1958년 동경대회부터이며, 이때 한국은 4명의 도로선수(김호순, 이홍복, 임상조, 노도천)을 파견하여 도로 전 종목(2개)을 석권하여 아시아 도로강국으로 부상하였으며, 국제대회 최초의 금메달 획득이라는 영광을 안게되었다. 그 후 아시아대회에 계속 선수단을 파견하여 98년 방콕아시아 대회까지 총 16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여 일본에 이어 2위에 있다.
86아시아 대회까지는 주로 도로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나, 90년 북경대회이후 트랙종목인 40km 포인트경기, 4km 단체추발, 4km 개인추발, 1km 독주 등에서 6개의 메달을 획득하였으며,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 5, 은 2, 동 6개를 획득하면서 역대 최고 많은 메달을 획득하여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이는 사이클 전용경기장인 벨로드롬이 83년(인천), 84년(의정부, 대구), 85년(춘천), 86년(서울), 87년(나주), 89년(의정부), 90년(전주), 91년(음성), 93년(대전), 99년(창원), 2002(금정, 영주), 2007(인천)에 건설되어 선수들이 본격적인 트랙전문훈련을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트랙종목의 경기력이 크게 향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2017년 6월, 진천선수촌 내 국제규격의 실내 벨로드롬이 완공됨으로써 우리나라 선수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 결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총 13개(금6, 은3, 동4)의 메달을 획득하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현재 대한자전거연맹에 등록된 선수는 약 1,100여명에 달하며 우리나라 사이클 수준은 점차 발전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